[김망고] 무제
1
마르띠리오는 자신이 한평생 연주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자신 말고도 모두가 저마다의 연주를 하고 있다고, 그래서 세상이 그토록 시끄러운 거라고 생각했다. 온갖 박자와 음계가 뒤섞여 세상은 늘 소란스러웠으나 귀를 막는다고 듣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모두가 잠든 새벽, 혼자 방에 앉아 있을 때만 짧은 고요를 느낄 수 있었고, 그것만이 마르띠리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조금씩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금세 사라지고 마는 덧없는 평화였지만 마르띠리오는 그 작은 토막의 시간을 좋아했다.
사람들이 제각각의 연주를 한다고 해서 모두의 음악이 아름다운 건 아니었다. 누구나 같은 악기를 타고 나지는 않으니까. 누군가는 처음부터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은빛 줄의 악기를 가지고 태어나는 반면에, 누군가는 이미 썩을 대로 썩어 듣기 싫은 울림만 만들어내는 악기가 가진 것의 전부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르띠리오는 자신의 악기가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썩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늘 곱고 청아한 소리로 연주하는 자신의 동생과는 다르게.
2
마르띠리오의 연주는 날이 갈수록 기괴해지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착각인지, 아니면 정말로 점점 더 많이 삐걱거리는 끔찍한 소리를 쥐어짜내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마르띠리오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어떻게든 소리를 만들어내지 않으려고 마르띠리오는 방 안으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조용히. 조용히 해. 아무 소리도 내지마. 그 역겨운 연주를 제발 멈추라고.
이불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마르띠리오는 되뇌었다. 조용히. 조용히. 조용히, 닥쳐, 제발. 그렇게 한참을 스스로에게 말하고 나면, 해가 자신을 드러내기 전 세상이 가장 어두워지는 깊은 새벽쯤이 되어 마침내 적막을 만날 수 있었다. 찰나와도 같은 적막. 마르띠리오에게는 그 짧은 순간이 정말이지 소중했다. 그때만큼은 아름다운 음악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초라한 연주를 더는 듣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래, 분명히 그랬는데.
언젠가부터 그 적막이 깨지기 시작했다.
3
처음에는 아주 작은 소리였다. 미세하게 들리는, 혹시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물었을 정도로 확신이 가지 않는 작은 파동 따위의 것. 그러나 소리는 날이 갈수록 커졌고 마르띠리오는 점차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확신을 가지고 문틈을 엿보았을 때,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 네가 있었다. 그토록 뚜렷하고 힘 있는 소리를 내는 사람은 오직 너뿐이었다. 오래전부터 수도 없이 떠올리고 되풀이해온 너의 연주를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너무나 맑고, 높고, 선명하고, 그래서 자신은 결코 넘볼 수 없는 그 팽팽한 줄의 소리가 마르띠리오의 새벽 속 고요를 완전히 뒤덮었다.
4
네가 망쳐놓은 거야.
마르띠리오는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 고요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데. 언니들도, 엄마도, 폰시아도, 하녀들도, 그리고 아버지까지도 모두 잠든 그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했는데. 어떤 강압적 목소리나 괴로운 신음소리, 서러운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시간이. 너는 마르띠리오의 평화를 망쳐놓았다. 아델라, 너의 연주가 마르띠리오의 새벽을 파고들었다. 날이 갈수록 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마르띠리오는 점점 더 자주 귀를 기울였다. 힘이 가득 실리다 못해 터져 나와 당장이라도 귀를 찢어놓을 것만 같은 높고 선명한 울림. 그건 오로지 너만이 낼 수 있는 소리였다.
5
너와 뻬뻬가 함께 마구간으로 들어간 날이면 마르띠리오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풀숲 사이로 파고들었다. 동생의 연주소리를 들으려고. 그 아름다운 음악 소리. 그 선율, 맑은 소리를 가졌지만 부드럽지만은 않은, 선명하고, 생기 있고, 깨끗하고, 팽팽하게 당겨진 줄을 힘껏 튕기는 듯한, 손끝이 찢어지고 피가 맺혀도 절대 멈추지 않는 빠른 연주소리. 그 소리를 들으며 새벽을 지새웠다. 너의 연주는 아름답구나. 나의 것은 그토록 기괴하고 흉한데도.
왜 너의 연주만이 그토록 좋은 소리를 낼까.
마르띠리오는 한 번도 그것을 궁금해 한 적이 없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타고난 것이 달랐으니까. 그래서 너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자신의 소리가 끔찍하게 여겨지면서도 감히 너의 소리를 넘본 적은 없었다. 그랬는데, 왜 이제야 그것이 궁금해졌을까. 궁금증이 너에게서 눈과 귀를 뗄 수 없게 만들었고, 매일같이 듣는 연주는 귓가에 들러붙어 이제 새벽이 지나 아침이 밝고 한낮이 찾아와도 그 소리가 들렸다.
아, 아름답네. 아름답다. 오직 너의 것만이. 나와는 다르게.
6
날이 갈수록 더 긴 시간 동안 너의 연주를 떠올리게 되면서부터 마르띠리오는 자신의 줄이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히 찢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언제라도 깡! 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끊어진 줄이 자신의 뺨을 치고 떨어져 다시는 연주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그런데도 마르띠리오는 너의 연주를 떠올리며 제 악기로 따라 연주해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너와는 전혀 다른 소리가 나는데도, 네 연주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고장이 난 것처럼. 금방이라도 끊어낼 듯 줄을 튕기다 짧은 손톱의 이가 나가도, 아픈 것쯤은 두렵지 않았다. 너의 연주를 흉내낼 수라도 있다면. 설사 그 힘을 견디지 못한 줄이 뚝 끊어진다고 해도.
7
하지만, 믿기지 않게도 먼저 줄이 끊어진 것은 네 쪽이었다. 불쌍한 아델라.
8
“문 열어, 아델라! 아델라!”
꼭 잠겨있던 너의 방문이 마침내 억지로 열리고 말았을 때, 모든 줄이 끊어지고 유일하게 남은 단 하나의 줄이 너를 매달고 있었다. 고정된 것처럼 흔들리지도 않고 단단하게 너를 붙잡고 있는 마지막 줄. 고작 그것이 네가 남기고 간 마지막 연주였다. 곧 비명과 울음소리가 뒤섞인 기괴한 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그 사람을 가질 수 있었으니 수천 번이라도 행복했을 거야!”
마르띠리오는 마침내 너의 음악이 제 것과 비슷해졌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세상 그 어떤 어둠보다도 더 까만 웃음소리를 망설임 없이 토해냈다. 지금까지 자신이 만든 소리 중 가장 크고 뚜렷한, 지독하게 깊고 어두운 웃음소리. 살갗을 찢는 듯 날카로운 소리들이 마치 불협화음처럼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너의 두 발 아래에 쌓여갔다.
9
그리고 침묵.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10
“다들 나가. 폰시아, 아델라의 시신을 내려서 치장할 준비를 해.”
베르나르다의 명령은 모든 소리를 죽이고 집 안에 침묵을 돌려놓았다.
작은 울음소리들을 꾸역꾸역 삼키며 방에서 자매들이 한 명씩 나가는데도 마르띠리오는 가만히 서서 아델라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주 높은 곳에, 힘없이 축 늘어져, 무참히 망가지고 만 아델라를 그저 가만히 응시했다. 이제 아델라의 방 안에 남은 사람은 아델라와 마르띠리오, 그리고 폰시아뿐이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폰시아의 물음에도 마르띠리오는 끄떡하지 않았다. 마치 그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사람처럼 빤히 아델라를 올려다보는 마르띠리오의 두 눈에는 더 이상 물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폰시아는 억지로라도 마르띠리오를 내보내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 새카맣게 물들어 끈적거리는 욕망의 덩어리를 어떻게 감히 건드릴 수가 있을까. 폰시아가 잠시 망설이는 동안 먼저 입을 연 것은 마르띠리오였다.
“곧 끊어질 거야.”
“끊어지다니, 뭐가?”
마르띠리오는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곧 폰시아의 질문은 필요성을 잃었다. 바로 다음 순간 아델라가 매달려 있던 줄이 투둑, 뚝 – 완전히 끊어졌으니까. 아델라의 몸은 속절없이 아래로 추락하여 마르띠리오를 덮쳤다. 아악! 폰시아는 비명을 질렀고, 다른 하녀들이 방으로 달려 올라오는 소리가 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너 괜찮니? 폰시아는 물어야 했다. 당연히. 그러나 폰시아는 자신의 입을 꾹 다물었다.
마르띠리오는 아델라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 마른 몸을 자신의 품에 완전히 가두고서 웃고 있었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폰시아의 귓가에 닿았으나 그것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건 마치 고장이 난 수레바퀴가 삐걱대는 마찰음처럼 확실하게 망가진 소리였으며, 분명한 것은 누군가가 듣기를 바라고 뱉어내는 말은 아니었다. 다만 오늘 밤 이 집 사람들이 악몽을 꾼다면 그 꿈의 반주로는 지금의 이 소리가 가장 적절하리라.
제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도 모르는 채로 마르띠리오는 아델라의 귓가에 자신의 마지막 연주를 들려주었다. 마지막 남은 줄이 끊어졌네. 아델라. 이제 너와 나의 소리가 비슷해졌어. 마르띠리오의 입가에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웃음이 번졌다. 그건 정말이지 기쁨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비로소 다시 고요한 새벽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제는 그 누구도 그의 고요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마침내 평화가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