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장례식
타나토리오로
*타나토리오 : 스페인의 장례식장. 매장 전, 관을 두고 가족과 친구가 철야 기도(vigil)를 하는 공간. 일반적으로 사망 후 24시간 이내에 망자를 묻는다.
겉으로 보기엔 전형적인 안달루시안 장례식이었다.
부고는 빠르게 퍼졌다. 너른 마당에 새벽부터 검은 옷을 입은 이웃과 친구들이 모였다. 장례식에 모인 모두가 망자에 대해 한 마디씩 보탠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안달루시아 사람들은 슬픔을 입에서 입으로 전하면 흘려 버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분위기가 다르다. 이 죽음은 유별하다.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목소리들은 평소보다 낮고 빠르다. 사방에서 던지는 충격과 호기심이 이슬처럼 축축하고 안개처럼 끈적하게 마룻바닥에 쌓인다.
장례사의 지시를 따라 마을 사람들이 나무관을 짊어지고 타나토리오로 향한다. 뒤따라 간 가족들이 벽을 등지고 앉아 작은 방을 채운다. 촛불에 비친 가족들의 그림자가 벽을 삼킨다. 미동 없는 사람들 대신 그림자가 일렁인다.
방 한 가운데, 빽빽이 늘어선 촛불 사이에 관을 내린다. 나무 뚜껑을 열면 유리 뚜껑. 그 아래 아델라가 있다. 하얀 실크 천이 턱부터 귀를 지나 정수리까지 한 바퀴 감싼 뒤, 목으로 내려와 턱 아래부터 쇄골까지 빈틈없이 감았다. 이토록 꼼꼼하게 목 부분을 가리기 위해서 베르나르다는 장례사에게 일반적이라고 할 수 없는 비용을 선지급했다.
철야 기도가 시작됐다.
앙구스티아스는 울지 않았다. 어머니가 울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집 밖에 나왔는데, 시선을 가린 검은 레이스 때문에 여전히 창살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이다. 관 속의 작은 머리통과 풍성한 곱슬머리를 감싼 흰 천을 바라보며 앙구스티아스는 자신의 웨딩 베일을 떠올렸다. 나는 또 검은 상복에 갇히고, 아델라가 하얀 베일을 둘렀다. 꼭 결혼식이 그 애의 목을 조르는 것 같다.
아멜리아는 관을 바라보지 않았다. 시선을 살짝 내려 촛불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눈이 건조해지면 조금 눈물을 흘렸다. 아멜리아는 철야가 좋다. 집보다 타나토리오가 안전하다 느낀다. 오늘 잠들면 반드시 악몽을 꾸겠지. 오늘 본 모든 광경을 잊을 때까지 자고 싶지 않았다.
마르띠리오는 아델라가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틀림없이 웃고 있다. 타고나길 삶이 쉬웠던 사람은 죽음도 쉬운 걸까? 아델라의 찡그린, 화내는, 침 뱉는 얼굴이 기억 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철 든 뒤엔 드물게 본 웃는 얼굴만 떠오른다. 지금 웃고 있기 때문이겠지. 저리도 의기양양하게. 마르띠리오는 지금 아델라가 맹렬하게 미운지 사무치게 그리운지 알 수 없었다. 늘 그랬듯이.
막달레나가 또 울부짖었다. 관을 뒤쫓으면서부터 줄곧 그랬다. 노래처럼 애절하게, 비명처럼 길게, 메아리처럼 떨면서 소리 질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쉰 목소리가 섞여 든다. 그러나 끊어지지 않는다. 영원히 목이 비틀리는 저주에 걸린 새처럼. 가끔씩 더운 숨이 울컥 걸리면 구토처럼 기침이 몰아쳤다. 옆에서 등을 쓸어주던 아멜리아는 둘째언니가 가여워 조금 따라 울었다.
베르나르다는 막달레나에게 닥치라고 할 수 없었다. 철야를 함께 해 줄 정도로 오지랖 넓은 몇몇 친척과 이웃의 안쓰러운 시선 때문이다. 대신 폰시아를 불러 몇 마디 속삭인다. 폰시아가 소리 없이 아멜리아에게 다가간다.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지시를 전달받은 아멜리아가 막달레나의 귓가에 달래듯 말을 건다. 집에 가서 좀 쉬자, 언니. 이러다가 쓰러지겠어. 막달레나는 대답이 없다. 상처 입은 짐승처럼 목이 끓는다.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아멜리아가 조심스럽게 막달레나를 일으켰다.
폰시아는 자기보다 한 뼘이 큰 언니를 부축해 타나토리오를 빠져나가는 아멜리아의 뒷모습을 시선으로 배웅했다. 공기를 찢고 가르는 듯한 막달레나의 곡성이 서서히 멀어진다. 새벽에 잃었던 고요가 돌아온다. 베르나르다가 베일 아래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을 폰시아만 눈치챈다.
폰시아는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델라의 곱슬머리를 한 입에 집어삼킨 것처럼. 이제 어떻게 할 거죠, 베르나르다? 저 소리가 듣기 싫다고 둘째의 목까지 조를 순 없을 텐데. 당신은 울음소리보다 고요를 더욱 두려워해야 해요. 당신의 소원대로 모든 소리가 차례차례 사라진 순간을.
집으로
거대하고 무거운 나무 문이 닫힌다. 막달레나의 흐느낌보다 높은 마찰음을 내며. 차가운 물 한 잔을 언니 손에 쥐어 주고, 아멜리아는 다시 타나토리오로 떠났다.
모자와 베일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의자 위에 늘어져 있던 막달레나가 손에 쥔 컵 속의 물을 자기 얼굴에 던졌다. 부은 눈가에서 뜨거운 눈물 대신 차가운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훔쳐낸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맞은편에 있는 아델라의 의자를 본 순간 다시 열이 차오른다. 누가 정수리에 송곳을 밀어 넣는 것 같다. 비명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언니이. 코맹맹이 소리가 들린 것 같다. 울먹이는 아델라가 의자에 앉아 두 팔을 내민다. 막달레나는 그것을 외면했다. 다시 돌아보면 의자가 바닥을 구르고, 아델라의 발이 허공에 떠 있다.
뇌 한가운데부터 코끝까지 울음소리가 가득 치밀어 오른 순간, 막달레나는 희미한 노랫소리를 들었다. 그제서야 타나토리오에 할머니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묘지로
마리아 호세파는 아델라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왼쪽 무릎을 세우고, 오른쪽 발목을 그 위에 올려 두고 까딱거리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시트 위에 아무렇게 흩어진 두 손이 침대를 두들기며 장단을 맞춘다.
막달레나가 아는 노래였다. 아기 때 할머니가 불러주던 자장가. 내가 동생들에게 불러 준 자장가. 막달레나는 침대 옆으로 다가가 미끄러지듯 바닥에 앉는다. 시트에 뺨을 내려놓는다. 미지근하다. 할머니의 온기일까, 아델라의 온기일까.
주름지고 마른 손이 막달레나의 정수리를 쓰다듬는다. 차갑다. 대들보에서 끌어내린 아델라의 손도 이보다는 따뜻했다. 할머니는 훨씬 예전부터 죽음과 가까이 지내서 그런 걸까. 어쩌면 막달레나의 정수리가 너무 뜨거워져 있는지도 모른다. 고통의 온도가 가라앉는다. 막달레나는 기절하듯 잠들었다.
눈을 뜨자 밤이었다. 달빛이 무자비하게 밝았다. 할머니는 아기처럼 자고 있었다.
막달레나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젊은 남자들이 건초 더미를 짊어지고 떠나는 모습을 구경했던 창문 밖으로 검은 마차가 묘지를 향해 간다. 철야가 끝났다. 아델라가 떠난다.
비명 대신 콧노래가 나왔다. 랄라랄라, 랄라랄라, 랄랄라 랄라 랄랄라… 양 손에 캐스터네츠를 꿰고 빙글빙글 춤추며 아델라가 길을 떠난다. 아델라는 춤 출 때만큼은 언니에게 팔을 뻗지 않는다. 어리광이 필요 없는 순간이니까.
아니야. 막달레나가 퍼뜩 고개를 저었다. 나는 마음이 편안해져선 안돼. 너의 마지막 매달림을 외면한 죄에서 눈을 돌려선 안돼. 그 끔찍한 순간을 잊을 자격이 없어. 마땅한 고통이 선명해지도록 눈을 질끈 감는다. 한 번만 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다면, 너를 다시 안아 줄 수만 있다면…
막달레나는 벌떡 일어나 옷장을 열었다. 화려한 레이스로 장식된 초록색 드레스를 꺼낸다. 상복을 벗고 꿰어 입는다. 어깨가 좁고 길이가 짧지만 간신히 입을 수 있다. 달빛이 가득한 좁은 방 안에서 막달레나가 빙글빙글 춤춘다. 아델라를 온몸 가득 껴안고. 가슴과 팔과 허벅지를 멍들도록 경쾌하게 두드리며. 꿈에서 다시 만나. 사랑하는 내 동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