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 침묵의 끝에서
수의를 입히는 것은 폰시아의 몫이었다. 스무 해 전 제 손으로 받아냈던 아기의 몸에 수의를 입힌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땋고 핏기 없는 양 볼은 발갛게 칠한다. 처녀처럼 치장하라고 했다. 폰시아는 명령을 따른다.
신방에 들어갈 법한 모습으로 아델라는 관 속에 들어간다. 장례식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불꽃처럼 춤추던 그 애의 몸이 차가운 흙 속에 묻히는 것을 보며 감히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에는 막달레나도 울지 않았다. 어떤 고통 앞에서는 눈물조차 나지 않는 법이었다.
무덤에 들어간 것은 아델라뿐만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무덤이 되었다. 산 자들의 생기 가득한 눈빛과 조잘거리는 말소리는 이제 그 집에 없다.
가장 먼저 무덤을 나온 사람은 앙구스티아스였다. 엄마, 전 그대로 결혼하고 싶어요.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딸의 목소리에 베르나르다는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앙구스티아스는 진주 세 알을 품고 집을 떠났다. 자매들은 질투도 책망도 하지 않았다. 이제 그런 것은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그들도 알았다.
폰시아는 주인이 없어진 의자들을 치운다. 베르나르다는 빈자리를 본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그는 감시하고 명령하고 통제한다. 폰시아는 그 명령을 따른다.
아멜리아는 침묵한다. 그것이 가족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마르띠리오는 차라리 저주받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머니도 언니들도 그 일을 해주지 않았기에, 마르띠리오는 스스로를 저주했다.
***
막달레나는 더 이상 낮잠을 자지 않았다. 인생을 잠으로 허비하는 것이 아델라에 대한 모욕처럼 느껴졌다. 막달레나는 깨어 있고 싶었다. 흐릿한 잠결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느낄 거야. 슬픔과 고통도 환희와 분노도.
막달레나는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일단 마음을 먹고 나자 나머지는 수월하게 진행됐다. 여비와 교통편은 폰시아가 마련해줬다. 나머지는 어머니가 집을 비운 때를 노리기만 하면 됐다. 문을 열고, 나가면 된다. 그뿐이었다. 이다지도 쉬운 일이었다.
동생들과의 작별인사는 간결했다. 일단 자리를 잡으면 너희도 데리러 올게, 이렇게 약속했다. 하지만 마르띠리오는 믿지 않는 눈치였고, 아멜리아는 원치 않는 듯했다. 이럴 줄 알았다고 픽 웃으며 막달레나는 폰시아에게 악수를 청한다. 폰시아는 손을 잡는 대신 막달레나를 꼭 끌어안았다.
폰시아는 막달레나의 얼굴을 본다. 나의 삼십 년을 꽉 채워 곁을 지킨 아이. 이 집에서 처음 탄생을 지켜봤던 막달레나. 그 후로도 세 명의 딸이 더 태어났지만 막달레나는 언제까지고 그에게 각별한 존재로 남아있을 것이었다.
내가 준 돈을 다 쓰면, 그다음엔 어쩌려고? 글쎄, 마구간에서라도 일하면 되겠지. 주름진 폰시아의 손을 잡으며 막달레나는 실없이 웃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주께서 함께하시길. 그렇게 막달레나는 무덤을 떠나 세상으로 나왔다.
***
딸의 배신을 알게 됐을 때 베르나르다의 격노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베르나르다는 고함을 치고 의자를 던진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들은 폰시아를 두렵게 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베르나르다가 가엾게 느껴졌다. 어리석은 사람, 아직도 이렇게나 모르다니.
폰시아의 표정을 읽은 베르나르다는 역정을 내며 손을 든다. 하지만 그의 손목은 힘없이 붙잡혀 버렸다. 이제 그만하세요, 베르나르다. 폰시아는 무력해진 폭군을 내려다본다. 그 싸늘한 눈빛에서 폭군은 자신의 마지막을 어렴풋이 보았다.
베르나르다가 무너진 그 날 밤 마리아 호세파는 문을 열고 나갔다. 무덤을 떠나 다른 무덤으로 향한다. 모두가 잠든 밤길을 맨발로 춤추며 걷는다. 흰 숄은 넘실거리는 파도가 된다. 흥얼거리는 콧노래는 모래알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 어서 와, 아가…. 가자, 동튼다….
마리아 호세파는 아델라가 태어나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전의 마르띠리오도. 그 전의 아멜리아와 막달레나와 앙구스티아스도. 그리고 베르나르다가 태어나던 순간까지. 마리아 호세파는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들었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마리아 호세파의 노래가 되고 눈물이 되고 새하얀 머리카락이 되었다. 모든 것을 보았던 마리아 호세파의 눈이 감긴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의 역사도 함께 영원한 잠에 든다.
다음날 마리아 호세파를 발견한 것은 어린 하녀였다. 손녀의 무덤가에 누워있는 모습이 너무도 평화로워, 꼭 잠든 것 같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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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들의 이름은 이름이 아니다. 그들은 소리 내어 불릴 수 없다.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은 죄악이다. 대신에 그들은 어둠이 내린 밤에, 닫힌 문 안에서, 정적과 고독 속에서 불리어진다. 눈물과, 한숨과, 한탄과 함께 내뱉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이름이 되지 못한다. 어둠 속에서 흩어져간다. 문과 담을 넘지 못하고 사라져만 간다.
망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광자들의 몫이다. 할머니가 떠난 후 그 몫은 마르띠리오가 물려받았다. 마르띠리오, 순교자의 얼굴.
마르띠리오는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았다. 그 무엇도 입에 대지 않았고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그 입에 오르는 것은 죽은 동생의 이름뿐이었다. 아델라, 아델라. 내 잘못이 아니야.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차라리 나를 죽여!
하루에도 몇 번씩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목에 핏대가 서도록 그 이름을 토해내는 마르띠리오의 얼굴은 아멜리아마저 두렵게 했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주고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어도 그뿐이었다.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의사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도 베르나르다는 마르띠리오를 감추는 데만 급급했다. 아델라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집안 가장 깊숙한 방에 마르띠리오를 숨겨뒀다. 지독한 년. 폰시아는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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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아주 오랜만에 마르띠리오가 조용히 잠든 밤이었다. 폰시아는 여느 때처럼 주인의 옷을 갈아입혀주기 위해 베르나르다의 방에 들어갔다. 촛불도 밝히지 않은 방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복도에서 새어나온 불빛에 베르나르다의 왜소한 윤곽이 드러났다.
주무셔야죠. 폰시아가 기척을 내는데도 그는 대답이 없었다. 폰시아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그제야 베르나르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울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소리도 내지 않고. 눈물만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폰시아는 아주 오랫동안 베르나르다의 몰락을 기다려 왔다. 그런데 이렇게나 무너진 그를 내려다보는 지금, 폰시아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그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차라리 베르나르다가 나를 비웃으러 왔냐며 그 독사 같은 혀로 빈정거리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엔 초라하게 늙어버린 한 여자뿐이었다.
폰시아는 베르나르다의 어깨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베르나르다는 뿌리치지 않았다. 대신 그 손에 자신의 얼굴을 기대고 계속해서 눈물을 흘려보냈다. 폰시아는 허리를 숙여 베르나르다와 눈을 마주친다. 눈물 젖은 그의 눈에서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폰시아는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낸다. 그리고 베르나르다의 입술에 자신이 입술을 포개었다. 베르나르다는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폰시아의 팔을 꽉 붙잡았다. 그러지 않으면 폰시아가 사라질까 두렵기라도 한 듯이.
폰시아는 눈을 감았다. 아,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삼십 년 전에는 창백한 과부의 파리한 입술에 색을 채워주고 싶었다. 그리고 십 년 전쯤에는 그 오만한 말을 더 이상 나불거리지 못하도록 찍어 눌러 수치심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연민도 증오도 느껴지지 않았다. 삼십 년은 꽃이 피고 또 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미 늦었다. 입맞춤은 무엇도 되지 못한 채 흩어져 갔다.
마르띠리오는 잠들었나? 정적을 깬 것은 베르나르다의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폰시아는 대답한다. 네, 간만에 헛것도 보지 않고 잠들었어요. 그래, 그러면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
다음날 아침 베르나르다는 하녀들보다 일찍 일어났다. 눈뜨기가 무섭게 그는 마르띠리오의 상태를 살피러 갔다. 방에 들어서자 싸늘한 공기가 두 뺨을 스쳤다. 그 순간 베르나르다는 직감했다. 마르띠리오가 결국 아델라를 따라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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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띠리오의 수의는 막달레나가 지었다. 마르띠리오가 가장 좋아하던 레이스를 사용해서.
장례식이 끝나고 막달레나가 다시 떠날 때, 아멜리아는 언니를 따라가기로 결심했다. 아멜리아는 항상 어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해왔다. 그런데 이젠 아니었다. 어머니가 권력을 잃었기 때문인지, 마르띠리오의 죽음에 무덤덤한 어머니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것인지, 아멜리아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몰랐다.
베르나르다는 떠나는 딸들을 붙잡지 않았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면서, 그는 폰시아에게 왜 따라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제가 떠나면 좋으시겠어요? 그것은 아무런 감정도 기대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궁금증에 의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베르나르다는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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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앙구스티아스는 남편의 방으로 향한다. 그의 손에는 술병이 들려 있다. 술에는 무언가를 타둔 참이었다. 안토니오의 심장을 멈추게 했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무언가가. 앙구스티아스의 얇고 창백한 입술이 미소를 띠었다. 내일부터는 동생과 할머니가 아닌 남편을 위한 상복을 입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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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레나는 바다에 도착했다. 길은 멀고 험했지만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삼십 년을 엄두도 못 내고 겁만 먹을 정도는, 확실히 아니었다. 막달레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바닷바람을 머금은 입술이 찝찔했다.
바다는 막달레나의 상상과는 사뭇 달랐다. 먹구름을 머금은 하늘은 잿빛이었고 파도는 사나웠다. 하지만 다르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곳엔 대문도 담장도 창살도 없었다. 오직 탁 트인 수평선만이 끝없이 펼쳐진 바다. 그것만큼은 막달레나가 꿈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
막달레나의 뺨에 물방울이 한줄기 떨어졌다. 빗방울은 어느새 두 줄기, 세 줄기가 되더니 후드득 장대비가 쏟아졌다. 막달레나는 손을 뻗어 빗줄기를 느꼈다.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얼굴이 비에 씻기게 내버려 뒀다. 흙먼지와 땀이 씻겨 내려갔다. 눈물과 고통과 괴로움도 함께 떠내려갔다. 후회와 슬픔과 죄의식과 그가 대신해 짊어진 모든 고난의 무게와 또 그가 외면했던 비통한 얼굴들도 모두 빗물에 씻겨 내려갔다. 막달레나의 뺨과 목과 손을 타고 흘러내려 바다가 되었다.
막달레나는 초록 드레스를 꺼냈다. 고이 접어 가져온 드레스를 펼쳐 마지막으로 들여다봤다. 기억에 영원히 새기려는 것처럼, 구석구석 사랑을 담아서. 수의로 입히려고 했어.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땅에 묻기엔 너무 아름다운 드레스라고, 폰시아가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줬어. 나는 이제 이걸 바다로 돌려보낼게. 네가 그리워했고 네가 있어 마땅한 곳으로.
막달레나는 치맛자락에 입을 맞추고는 드레스를 날려 보낸다. 드레스는 바람을 타고 초록색 날개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간다. 저 멀리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막달레나는 한참동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먼 하늘에서 해가 드러나고 있었다.
